다수결의 원리는 무엇일까?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민주주의의 기본요소를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서는 다수결과 방어적 민주주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다수결의 의의와 정당화 근거

지난 시간에 우리는 국민주권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국민주권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이념입니다. 그럼 국민이 주인된 권리를 실현해야합니다. 국민이 직접 참여해서 실현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국민이 대의기관을 선출하고 그 대의기관이 내린 결정을 국민의 의사로 간주하고 실행하는 겁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대의기관 내에서, 아니면 민주주의 과정에서 의사를 확정할 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할까요?

대의기관 내에서 국민의 의사를 확정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입장이 대립할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어떤 법안을 만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럴 때 의견이 일치되기보다는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갈리는 경우를 많이 볼 겁니다. 사실, 오늘날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되리라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100명으로 이루어진 A 단체에 가입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A 단체에서 의사를 한 곳에 모아서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A 단체의 단장이 이번 모임이 끝나고 밥을 산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각자 원하는 것을 먹으면 좋겠지만, 번거로움으로 인해 하나의 메뉴로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편의상 자장면과 짬뽕으로 나눈다고 하겠습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단일한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여기에서 제일 힘이 쏀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시험을 봐서 1등을 한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을 먹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대안이 나올 수 있겠지만, 민주적으로 결정한다면 어떤 방법이 떠오르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다수결 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먹고 싶어 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이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수결을 통해 의사결정을 합니다. 이의 원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의사결정 방법입니다. 오늘날에는 국가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집단 내에서 결정을 내리기 힘든 경우가 있으면 다수결을 통해서 결정하고,이를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으로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왜 다수결로 결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왜 이가 민주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걸까요? 그리고 다수결의 원리와 민주주의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이번 강의는 여기에서 시작해 보려고합니다.

2. 다수결의 정당성 근거

다수의 정당성, 다시 말해서 다수결이 왜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 방법인지를 설명하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다수의 수적 우위나 사실적 세력의 우위 때문에 다수가 내린 결정이 정당하다. 다시 말해서 더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안이 더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고, 더 큰 세력이 선택한 쪽을 따라가는 것이 맞다는 논리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수결은 이런 이유 때문에 채택되었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는 민주주의와 관계없이 발전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이전에도 존재했던 의사결정 방법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중세시대 등족 회의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유래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과거 중세에서는 황제를 투표로 뽑기도 했습니다.

다수결제도-역사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선출할 권한을 가졌던 7명의 선제후(選帝侯)들이 회의하는 모습

물론 이는 만장일치제이기는 했지만, 일종의 다수결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논리를 이렇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중세시대 가상의 왕국에서 영주들이 황제를 뽑기로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영주가 5명인데 4명은 A를 황제로 뽑으려고 하고, 1명은 B를 황제로 뽑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는 A가 황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B가 황제가 되면, 나머지 4명의 영주들이 합심하여 B를 뽑으려고 했떤 영주를 물리치고, 결국에는 B를 몰아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가 결정한 것에 복종해야 한다는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으로 정당한 것일까요? 다수결을 이런 식으로 정당화하면 이가 민주주의와 필연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정당한 논리는 단순한 현실 논리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런 상황도 정당화됩니다.

방금 100명이 있는 A단체에서 자장면과 짬뽕 중 99명이 자장면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명이 짬뽕을 먹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짬뽕을 먹자는 친구가 나머지 99명을 다 이길 정도로 힘이 강하였습니다. 현실 논리에 다르면 수적 우세가 실질적인 세력의 우세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다수결의 정당성을 사실적 세력의 우위에서 찾는 것은 현실논리라는 차원에서 타당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규범적 정당성, 법적 정당성을 확보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결국 단순한 힘의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실의 힘의 논리가 다수결이라는 규칙의 정당성을 보장해 줄 수는 없습니다. 힘의 논리에서 다수결의 정당성을 찾는다면, 이의 원칙은 민주주의 이념과 부합하지않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힘이 센 사람에게서 힘이 약한 사람들이 저항해온 과정 속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힘이 센 쪽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힘의 논리는 민주적 다수결 제도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다.라는 주장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이면 한 명이 있을 때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원래 집단지성은 개미같이 군집을 이루는 곤충의 행동을 연구하면서 나온 개념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개념을 인터넷 시대의 사회 현상에 적용하면서 대유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집단지성은 개별적 개체들이 상호협동과 경쟁을 통해서 더 크고 완전한 지식을 만들어 가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개별 개체들의 지식은 불완전하지만 이런 개별적 주체들이 상호 보완을 통해서 완전한 지식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이 논리에도 반론이 있습니다. 과연 다수가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결정을 내릴까요? 과연 다수가 항상 옳은 선택을 할까요? 다수가 항상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바보가 모여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히려 사안에 따라서는 전문성을 갖춘 소수가 일반인 다수가 보지 못하는 혜안을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집단지성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올바른 정보가 유통되고 제대로 검증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작동하는 집단지성은 집단 광기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3. 다수결의 성립요건

다수결의 정당화 근거를 뒤집어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다수결을 통해서 자유와 평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당화 될 수 없는 잘못된 것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자유와 평등의 확보라는 것은 다수결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다수결 결과의 정당성과 효력을 제한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다수결은 자유와 평등이 확보된다는 전제 하에만 평등합니다. 만약 이의 과정과 결과가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정당하게 성립될 수 없거나, 제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다수결이 성립되는 전제조건이 도출됩니다. 이 조건을 충족시켜야 정당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을 하려고 다수결을 제도화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조건입니다.

3.1. 다양한 형태의 선택이 가능

첫째, 다양한 형태의 선택이 가능해야 합니다. 즉 선택에 있어서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원주의와 깊은 관련성을 가집니다. 다원주의는 다수결은 물론이고 민주주의가 정당하게 작동하는 전제 조건이 됩니다. 다양한 대안이 제시될 수 있고, 그 대안 중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 한 사람만 대통령 선거에 나올 수 있고, 그나마도 찬반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다수결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3.2. 모든 사람의 평등한 참여

둘째, 다수결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결정의 대상이 되는 안건의 성격에 다라 참여의 범위는 제한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여의 범위가 확정되면 그 범위 안에서 최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참여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평등한 참여가 보장되는 만큼 그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이 커지기 떄문입니다. 1000명이 한 결정보다 10000명이 한 결정이 더 큰 무게를 가집니다. 만약 다수결 과정에서 결정 당사자의 참여를 배제하면 자유와 평등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3.3. 다수의 형성이 변할 수 있으며, 다수와 소수의 교체가 가능

셋째, 다수의 형성이 변할 수 있으며, 다수와 소수의 교체가 가능해야 합니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다수결은 아예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한번 소수파가 되었을 때 영원히 다수파가 될 기회가 없다면, 누가 다수결 결과에 승복할까요? 하지만 그 소수가 다수의 결정을 수용하는 이유는 소수가 언제인가 다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소수이지만 미래의 다수가 될 수 있고, 미래의 다수가 나중에 자신의 결정을 상대방에서 수용하도록 설득하려면 지금 내가 이 결과에 승복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 결정이나, 이번에 형성된 다수가 절대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결정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다수가 소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수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수결은 다수를 형성한 세력에게 결정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민주주의라는 것은 승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승자 독식의 게임이 아닙니다. 아무리 다수라고 하더라도 소수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다수가 언제인가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3.4. 국민의 자유와 평등에 관련된 것

넷째, 국민의 자유와 평등에 관련된 것이어야 하며, 확인 가능한 객관적 진리 또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는 사안은 제한됩니다. 이는 모든 사항이 다수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예로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집니다. 이를 다수결로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진다고 결정한다고 해서 그 결정대로 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 사회의 근본적 가치 영역에 속하는 것도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헌법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같은 문제를 다수결로 폐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다수결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데, 그 조건을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일종의 논리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소위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는 경우에도 다수결은 적용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 인가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도의 전문 영역에서 다수결이 전면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과학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일어난 결정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미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전자 조작 식품을 수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이런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상당한 정도의 과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유전 공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를 조작해서 새로운 형태의 농산물을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곡식의 알갱이 수를 배로 늘리거나, 과일의 크기를 두배로 한다던가 이런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유전자 조작식품이 인체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일반인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밥상에 유전자식품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유해성이 발견되었다고 생각 한다면 이는 엄청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서 결정된 것들이 우리의 자유와 평등 문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 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전문적인 판단이 요구되지만 판단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때, 제한적인 범위에서 다수결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 영역에서 다수결을 실현하는 제한적인 방법으로는 참여하는 자의 범위를 전문가로 제한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으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시민 대표단이 결정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과학 영역처럼,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수결의 원리가 있는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점 정도만 알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아예 배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면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3.5. 소수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다섯째, 다수결은 소수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 야기는 다수결의 일반적인 원칙과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수가 내린 결정은 소수에게도 관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A의 단체에서 자신은 자장면은 선택했으나 짬뽕이 뽑혔다고 자장면을 고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수의 결정이 전체 사회를 구속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수의 결정이 전체 사회를 구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결정이 소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데서 나온 결정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사실, 소수파에게 다수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은 일종의 억압입니다. 내가 뽑지 않은 이의 통치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영 내키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억압을 최소화하려면, 다수파가 소수파를 최대한 존중하도록 배려하고 체계와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소수자 보호의 정신은 우리 헌법에도 있습니다. 특히 헌법 개정에 나와있습니다. 헌법 개정에서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헌법개정안이 통과되도록 만든 조항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과반수가 아닌 소수라도 국회의원의 3분의 1만 되면 개헌한을 저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 의회 다수가 헌법 개정을 통과시켜서 밀어붙이려고 한다면 소수를 설득하지 않으면 절대 헌법 개정이 안되도록 만들어 놓은 일종의 제도적 장치인것입니다. 사실 소수파를 보호하면 보호할수록 다수의 의견이 쉽게 관철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수파를 설득할 수 있는 다수파의 결정이라면, 정당성과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은 더 쉬울 것입니다. 헌법개정안도 단순 과반수에 의해서 통과된 개정안보다는 소수파의 동의 아래에 통과된 개정안이 민주적 정당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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