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의 진화: 과거에서 현재까지

국민주권과 나란히, 군주, 국가, 의회주권과 같은 용어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논의가 바로 “주권론”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권에 대한 이론입니다. 주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주권이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군주주권은 주권이 군주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국가주권은 주권이 특정한사람이나 세력 아니면 기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에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국민주권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다양한 주권이론은 주권이론이 역사적 변화 속에서 만들어 놓은 진화의 흔적들입니다. 여기서 주권이론의 대상이 되는 주권의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중세시대의 신과 군주: 주권의 유래”

중세시대에 군주와 영주들은 자신의 지배 권력을 교황을 통해서 승인받았습니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아무리 강력한 군주라고 하더라도 교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면 권력을 내랴 놔야 한다는 말입니다. 서구 중세시대의 질서에서 주권은 신과 관련되어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세시대에서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하고 창조된 세계를 지배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세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주권은 절대적이면서 최고의 권력이었습니다. 이런 평화는 중세 말에 민족을 중심으로 한 국민 국가의 힘이 세지기 시작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군주들이 교황의 간섭에 불만을 품기 시작한 겁니다. 그 사건은 카노사의 굴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가지고 있던 성직자 임명권을 둘러싼 다툼에서 시작됩니다. 당시에는 교황의 권위가 더 강력하였고 한겨울에 황제가 며칠 동안 성문 밖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굴욕을 겪고 나서야 겨우 용서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에 중세 질서가 무너지면서 교황권은 점차 추락합니다. 이에 반비례해서 각 나라 군주의 권한은 점차 강력해집니다. 각 나라가 자국의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우리가 주권이라고 부르는 개념은 이때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주권이 군주의 주권으로 세속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군주주권론의 대두

카노사의 굴욕 사진

이러한 시기에서 국가의 주인은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군주, 왕이 국가의 주인이 되고 주권을 가져갑니다. 이것을 군주주권론이라고 합니다. 사실 종교 전쟁에 대한 민중의 염증과 회의가 근대 국민국가 등장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유럽의 각 나라들은 종교적 이념을 중심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느 순간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싸우는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 혼란 속에서 종교나 외세의 간섭 없이 민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에서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싹트게 됩니다.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 국민국가, 또는 민족국가가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짐이 곧 국가다” 이 말은 국가의 주인은 군주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권은 당연히 군주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주주권의 이념적 배경에는 여전히 중세적인 신학적 요소가 있었습니다. 아직 덜 세속화 된 거죠. 정치 권력은 항상 스스로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럼 군주가 되려면 무엇인가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런데 왜 당신이 왕이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정당성이 유지가 됩니다. 그렇게 각 나라의 왕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의 아버지가 왕이었거든” 그러면 우리는 또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럼 너희 아버지는 왜 왕이었니” 이렇게 끝없이 물고 늘어지다 보면 한가지 대답으로 귀결됩니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는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세계 각국의 건국 신화들은 이런 식으로 왕의 정통성과 지배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근대 초기에도 절대군주의 정통성에 대한 복잡한 논의를 단순화하려고 일종의 도식을 만듭니다. 이걸 왕권신수설이라고 합니다.

“왕권신수설” : 왕권신수설은 17세기 당시에 전 유럽을 지배했던 정치 이론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절대주의 국가에서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왕은 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인민은 저항권 없이 무조건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혁명과 국민주권: 프랑스 혁명의 역할”

그런데 18세기에 접어들고,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게 되면서 근본적인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신이 왕에게 주권을 주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거죠.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군주 그러니까 왕이 국가의 주인이어야 하는 것인가? 와 같은 질문들을 말이죠 국민으로서는 이상합니다. 자신의 세금으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관리하고 자신이 없으면 전쟁도 못 하는데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왕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없으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와 더불어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군주 중에서는 무능한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국정을 돌보지 않고 세금으로 민생 경제를 파탄에 몰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이론 사회계약론이 나옵니다. 간단하게 군주의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에 기초한다는 말입니다. 이에 따르면 주권은 원래 개인이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인 주권을 군주에게 위탁하고 대리 통치를 하도록 일종의 신탁 계약을 한 것이라는 겁니다. 만약 군주가 이러한 약속을 어기고 자신에게 즉, 군주에게 주어진 권리를 남용한다면 국민은 언제든지 끌어 내릴 수 있다는 논리가 유행합니다. 이 논리는 프랑스 혁명의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프랑스 혁명은 민주주의 성립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정점은 국왕(루이 16세)을 처형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군주가 없어도 국가가 존재할 수 있으며, 오히려 국가의 주인은 사실상 국민이었다는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군주가 죽어도 국가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국민이 거부하면 그 어떤 강력한 권력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중세시대 이전 주권은 가장 힘이 강력한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었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군주인 줄만 알았던 국민은 자신들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4: “현대 국민주권의 의미와 미래”

그 뒤 유럽 사상가들은 국민주권에 기초해서 스스로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발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사회계약론에서도 국왕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역사가 기술된 이후에 왕이 없었던 정치체제는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이 없어도 잘 굴러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로마의 민주주의와 공화정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시민에 의해서 자기 지배가 가능한 체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재발견 된 겁니다. 유럽의 정치학자들과 혁명가들은 앞에서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현실정치에서 부활시키려고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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