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1일 제 2차세계대전의 총성과 같은 독일의 번개전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은 폴란드에 대한 번개전을 개시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번개전이 무엇이고 독일은 왜 이 전술을 선택했을까? 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번개전이란
Blitzkrieg라는 독일어로, 번개처럼 빠르고 강력하게 적을 공격하는 전술을 말합니다. 번개전의 핵심은 기갑부대와 공중부대를 조화롭게 운용하여 적의 방어선을 파괴하고, 깊숙한 후방으로 진격하여 적의 의지와 사령부를 붕괴시키는 것입니다. 이 전략은은 전통적인 전면전과 달리, 적의 약점을 찾아서 뚫고, 적의 보급로와 통신망을 끊고, 적의 주력부대를 포위하거나 격파하는 전술입니다.
독일이 번개전을 선택한 이유
- 독일은 자신의 군사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인식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군비를 제한당했습니다. 1930년대에 나치당이 정권을 잡고 군비를 확장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인력과 재료가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독일은 한 번에 하나의 적과 싸우고, 빠르게 승리하여 다음 적과 대결할 수 있는 전술이 필요했습니다. 번개전은 이러한 요구에 부합하는 전술이었습니다.
- 독일은 자신의 지리적 위치가 불리하다고 인식했습니다. 독일은 육로로 둘러싸인 내륙국가로서, 해상무역에 의존하는 영국과 달리 자원과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독일은 서쪽에 프랑스와 벨기에, 동쪽에 폴란드와 소련과 같은 강력한 적국들과 접해있었습니다. 이들은 독일의 확장주의적인 야망에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독일은 자신의 생존공간(Lebensraum)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 국가들을 공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번개전은 이러한 목적에 적합한 전술이었습니다.
- 독일은 자신의 군사문화가 우수하다고 인식했습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기갑부대와 공중부대를 사용하여 혁신적인 작전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이러한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군사체제와 교육을 개선하였습니다. 특히 독일은 장교들에게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강조하고, 작전의 목표와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습니다. 이러한 군사문화는 번개전을 수행하기에 적합했습니다.
전쟁의 흐름
독일은 폴란드와 접한 서쪽과 남쪽에서 각각 북부 집단군과 남부 집단군으로 구성된 약 60개 사단과 6개 기갑 사단을 투입하였습니다. 이들은 폴란드의 주요 도시인 바르샤바, 크라쿠프, 로즈, 비엘스코-비아와 등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슬로바키아 공화국은 독일의 동맹국으로서 3개 사단을 보내어 남부 집단군에 참여하였습니다.
1939년 8월 31일 밤, 독일은 글라이비츠 방송국 공격 사건 을 연출하여 폴란드가 자신들에게 공격한 것처럼 위장하였습니다. 이것은 독일이 폴란드에 대한 정당한 반격을 한다는 핑계가 되었습니다. 9월 1일 새벽, 독일은 폴란드 전역에 대한 공중 폭격과 함께 육지와 바다에서의 침공을 시작하였습니다. 독일의 전투기와 폭격기는 폴란드의 공군 기지, 군사 시설, 교통 수단, 통신 시설 등을 파괴하였습니다. 독일의 전차와 기계화 보병은 폴란드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적의 후방으로 진격하였습니다.
그리고 폴란드의 침공은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독일의 공격은 국제 연맹의 평화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두 번째 세계 대전을 야기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의 독립을 지지하며 독일에게 전쟁 선포를 하였지만, 초기에는 주로 마지못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폴란드는 독일의 번개전에 대응하기 어려웠습니다. 폴란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롭게 독립한 나라로서 군사력이 약하고 군비 경쟁에 뒤처져 있었습니다. 폴란드는 전차와 항공기보다는 보병과 기마병을 주력으로 하였고, 전쟁 준비도 미흡하였습니다. 폴란드는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바라고 있었지만, 이들은 폴란드를 구하기 위해 실질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9월 17일, 소련은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 에 따라 폴란드의 동부 지역을 침공하였습니다. 이로써 폴란드는 동서 양쪽에서 적에게 포위되었습니다. 폴란드는 점점 힘을 잃어가며 저항하였지만, 결국 10월 초에 전면적으로 항복하였습니다.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하여 점령하였고, 폴란드 정부와 군대는 망명하거나 지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폴란드는 국토의 일부가 독일과 소련에게 분할되어 점령되었으며, 폴란드의 인구는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으며, 유럽 전역에 걸친 치열한 전투와 갈등의 연속을 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번개전의 한계
- 연료와 보급 : 독일은 공격적인 전진을 위해 많은 연료와 탄약을 소모했지만, 그만큼 보급선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폴란드에서부터 프랑스, 소련, 북아프리카까지 넓은 전선을 열어놓은 독일은 보급선이 늘어지고 취약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은 전투 중에 연료나 탄약이 부족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으며, 이는 결국 공격력과 방어력을 저하시켰습니다.
- 정치적인 문제 : 독일은 번개전으로 인해 초기에는 많은 영토를 점령할 수 있었지만, 그 영토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독일은 점령한 국가들에게 과도한 압박과 착취를 가했으며, 이는 점령민들의 반독저항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또한 독일은 번개전으로 인해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적인 관계도 악화시켰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에 대한 독일의 공격에 반대하며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소련은 독일과의 협정을 파기하고 반독전에 가담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문제들은 독일의 전력을 분산시키고, 적대국들의 연합을 강화시켰습니다.
독일의 번개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독일의 전술에는 연료와 보급, 정치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으며, 이들은 결국 독일의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독일의 전술은 군사사에서 혁신적인 전략으로 평가받지만, 역사사에서는 실패한 전략으로 기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