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것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이자 우리가 마지막으로 다룰 주제는 다원주의와 여기서 파생하는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입니다.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은 다음 포스팅에서 확인해주세요

1. 다원주의란 무엇일까

다원주의는 다수결을 성립하는 전제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는 생각보다 그 의미가 더 넓고, 민주주의 전체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화 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주장과 권위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다원주의는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을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한자로 풀어본다면 多元主義 (많을 다, 근원 원, 주인 주, 옳을 의)에서 多元(다원)은 다양한 근원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다원주의는 사회가 하나의 근원으로 해석되거나 또는 그 것의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근원들이 상호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념을 뜻합니다.

다원주의의 반대 개념은 일원주의 또는 전체주의라고 합니다. 일원주의는 오직 하나의 가치나 권위만 인정하고 모든 것을 그것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중세는 일반적으로 신을 중심으로 한 일원주의 사회였다고 이야기 합니다. 모든 사회 현상과 정치 현상이 신에 의해 설명되거나 정당화되지 않으면 배제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일원주의가 유행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반공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애국자냐 빨갱이냐 이단 하나의 이분법적 코드로 나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을 기준으로 빨갱이로 찍히면 아무리 아름다운 곡을 쓰는 작곡자도, 아무리 똑똑한 천재 과학자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문제가 단 하나의 관점과 가치를 가지고는 완전히 이해되거나 해석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가치와 권위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2. 다원주의와 가치상대주의

이렇게 세상이 다양한 가치관으로 해석될 수 있고,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다원주의는 철학적으로 가치상대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가치상대주의란 나만 옳은 것이 아니고 누구든 각자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고 어떤 의견이든 자신이 믿는 생각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치상대주의 철학이 정치영역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가치 상대주의에 입각한 다원주의를 형식적 다원주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가치 상대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 올라가면 이상한 현상이 발견됩니다. 다원주의가 다원주의를 파괴하는 역설적 결과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식적 다원주의의 결정적 약점입니다. 사실 누구나 옳다는 말을 거꾸로 말하면 누구도 옳지 않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상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결정 장애에 빠져들게 되는 겁니다.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는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자유와 생동감이 넘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냉소적인 분위기만 넘쳤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자, 아니면 공명선거를 하자. 이렇게 주장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극단적인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나 잘하세요.” 이렇게 말이죠 그럼 누가 나서서 일을 하려고 할까요?

3. 형식적 다원주의의 폐해

3.1. 형식적 다원주의의 역설

오늘은 다원주의라는 사회 모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과 가치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다원주의는 예상치 못한 문제와 역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원주의는 컨트롤타워 없이 각자 자기주장을 하면서 세월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적인 권력의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과거에는 국간, 종교가 지배하고 있던 영역이 있었는데 이것이 무주공산이 된 것입니다.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이라고, 국가와 교회가 떠난 공백을 그 다음으로 힘이 센 사람이 지배하게 됩니다. 대기업이라던가, 각종 이익 단체들이 이 자율적 영역들에서 마치 소왕국의 군주들처럼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다원주의의 역설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고안된 다원주의에서 힘이 센 사람이 오히려 다양한 가치를 억압하는 역설적 현상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치상대주의에 기초한 형식적 다원주의의 가장 큰 역설은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다원주의에 반대하는 반다원주의적 가치를 다원주의에서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다원주의라는 집을 차지하려는 강도마저 다원주의에 포함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3.2.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보는 형식적 다원주의의 패착

형식적 다원주의의 결정적인 패착이 이것이 되게 됩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험이 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극단적인 가치상대주의에 기초한 형식적 다원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에게도 민주주의를 허용하는 어리석은 실수를 한 것입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법적 체계는 형식화된 합법성 사고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으로는 의회에는 다양한 세력이 들어 올 수 있어야 하고 그 안에는 의회의 적도 의회 안에서 활동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세력의 합의에 의해서 의회에서 법이 만들어졌다면, 그 법은 내용에 관계없이 모두 정당한 것으로 인정돼야 된다. 라는 개방적 또는 다원주의적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3.3. 민주주의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적이 된 히틀러

또한 민주주의의 적이었던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 세력은 이 논리를 이용해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반민주적인 정권이 가장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되고 독일과 세계 전체를 파멸로 몰아간 것입니다. 바이마르 경험은 합법적인 불법적 독재가 성립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 되었습니다. 당시 히틀러가 주도하는 나치당은 1928년 선거에서 유효 득표수의 491석의 의석 중에서 12석만 차지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습니다. 그런데 2년 뒤인 1930년 선거에서 18% 득표률로 107의 의석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932년 선거에서 지지율의 37.2%인 230석의 제 1당으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4년 만에 군소정당에서 제 1당으로 급부상한 셈입니다. 초기에 나치는 수적으로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조직적으로 뭉쳐서 응집력을 발휘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정치적 상황과 환경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급부상 한것입니다.

4. 가치 구속적 민주주의

그렇게 바이마르 공화국이 몰락하면서, 가치중립적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치 구속적 민주주의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치 구속적 다원주의 또는, 가치구속적 민주주의는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전제가 되는 최소한의 근본 가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부정하거나 공격하면 민주주의의 적으로 보고 헌법적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합니다. 오늘날 헌법학은 이것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합니다. 이것은 상대주의적, 자유주의적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그 한계로서 가치구속성을 전제합니다. 자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존립의 최소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독일 연방헌법 재판소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기본법 제21조 제2항의 의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형태의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국민의 자주적 결정에 기초한, 그때그때의 다수에 다라 그리고 자유와 평등에 따라 구성된 법치국가적 통치질서를 말한다. 이러한 질서의 기본적 원리에 속하는 것으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헌법에 의해 구체화된 인권, 특히 생명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에 관한 개인의 권리의 존중, 국민주권, 권력분립, 책임정치, 행정의 합법률성, 법원의 독립, 복수정당제와 야당의 합헌적 형성과 활동에 관한 권한을 포함한 모든 정당의 기회균등”을 의미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한편 우리 헌법 재판소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 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 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 정당제도, 선거 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 체제 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헌재 1990. 4. 2. 89헌가 113)

결국, 다원주의와 가치상대주의는 상호 보완적인 개념으로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되 근본적인 가치와 원칙을 지키며 사회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인권과 자유, 공정과 정의를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사회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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