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적 민주주의: 국가 안전과 자유의 균형

1. 방어적 민주주의의 기초논리

1.1.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민주주의가 실현시켜야 할 가치들의 최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소극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구체화 됩니다.이것은 “전투적 민주주의” 또는 “투쟁적 민주주의”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1.2. 방어적 민주주의의 기초 논리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다원적 개방성에 대해서 “가치 구속성”이라는 일정한 한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방어적 민주주의는 가치 구속적 다원주의, 또는 가치 구속적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상대적 가치중립성을 지양하고 민주주의가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 자신의 방어책을 스스로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평소에 몸을 잘 관리해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도 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도 챙겨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단 병에 걸리면, 그다음에는 치료의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자연치유 몸이 스스로 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 차도가 없다면 약물치료인 약을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으로도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최후 수단으로 수술을 고려하기도 합니다. 특히 암세포 같은 경우에는 그냥 두면 다른 정상적인 기관에 전이되어서 암을 퍼트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되기 때문에 약으로 암세포를 죽일 수 없으면 그 암세포가 퍼진 부분을 외과적으로 도려내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 입니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국가에서는 민주주의의 파괴하려는 암적 존재들이 발붙이지 못합니다. 만약 그런 불순한 세력들이 침투한다고 하더라고 자연치유와 같이 민주주의 정상적 작동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입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 민주주의의 적이 암세포처럼 커져서 민주주의의 정상적 과정을 왜곡하고 헌법 질서 전체를 위기에 몰아 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방어적 민주주의를 고려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냥 두면 민주주의 전체에 그 독소가 퍼져서 민주주의 자체가 소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민주주의 최후의 수단 방어적 민주주의

2.1. 기본권 실효제도

특히 독일은 방어적 민주주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습니다. 나치의 전체주의 지배에서 혹독한 교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들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본권 실현제도와 위헌정당해산제도입니다. 먼저, 독일 기본법 제 18조를 보면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공격할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 특히 출판의 자유(제5조제1항), 강의의 자유(제5조제3항), 집회의 자유(제18조), 결사의 자유(제9조), 서신, 우편 및 전신의 비밀(제10조), 재산권(제14조) 또는 망명권(제16조제2항)을 남용한 자는 기본권을 상실한다. 상실 여부 및 정도는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하여 결정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해서 그에 대해서 기본권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제도를 기본권 실효제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는 도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2.2. 위헌정당해산제도

다음으로는 위헌정당해산제도가 있습니다. 위헌정당해산제도는 형식적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헌법질서를 수호하려는 제도가 아닙니다. 다시말해서 위헌정당해산제도는 형식적 다원주의의 극단적 관철로부터 발생한 폐해를 방지하고 예방하기 위해 생겨났으며, 가치구속적 민주주의 및 상대적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헌법질서를 수호하려는 제도입니다. 그 예로 독일 연방헌법 제21조는 제2항에서 “목적이나 당원의 행동이,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침해, 폐지하거나 또는 독일 연방공화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당은 위헌이다. 이에 대해서는 연방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라고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기본권 실효제도가 한 번도 적용되지 못했던 것과 다르게 위헌 정당 해산은 독일 헌정사에서 몇 번 있었습니다. 히틀러가 주도했던 독일 나치당은 2차 대전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나치 잔당들이 독일 사회주의제국당(sozialistische reichspartei deutschlands)라는 이름으로 나치 이념을 추정하는 세력이 남아서 활동했던 겁니다. 그래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정당을 위헌 정당으로 규정하고 해산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실 이 결정은 나치즘을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추방하려는 전 독일 사회의 정치적 공감대 속에서 나온 결정이기 때문에, 큰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956년 독일공산당(kommunistische parteien deutschland)의 결정이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던 독일 공산당에 대하여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일단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가치를 위협한다는 사유로 해산을 결정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독일 사회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개념 그리고 양자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당시 독일 사회가 독일공산당이 민주주의 적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는데에서 문제의 시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어적 민주주의가 목적하는 적은 전체주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치 후신인 독일 사회주의제국당을 위헌 정당으로 인정하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독일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사상을 매개로 해서 러시아의 소비에트 연방과 일정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이라고 불리던 소비에트 연방은 공산진영의 맹주였습니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역시 동독과 서독으로 분할되어 있는 처지였습니다. 만약 독일 공산당이 민주주의의 적이고, 그래서 전체주의 정당이라면, 소비에트 연방, 소련도 전체주의 국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소련은 2차 대전 동안 미국, 영국 등하고 같이 독일 나치에 대항하여 연합군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공산당과 소비에트 연방 모두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 냉전이 격화되면서, 서구 유럽이 소련을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라고 비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부 비판적 지식인은 독일 공산당에 대한 위헌 결정이 냉전적 사고방식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2.3. 세계 곳곳의 위헌정당 해산

그 이후 독일에서는 위헌 정당 해산을 했던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세계 곳곳에서 위헌정당해산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터기의 헌법재판소도 1998년 이슬람 율법을 절대화해서 신정주의를 추구했던 터키 복지당을 해산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정당의 목표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헌법 정신을 위배했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리고 스페인 대법원도 2003년 바스크 지역 독립을 주장하는 바타수나당이라는 정당이 테러를 감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페인 대법원은 이에 대해서 해산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2007년 태국에서 총선 부정선거로 낙마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타이락타이당이라는 정당이 해산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는 이집트의 원리주의자 집단인 무슬림 형제단이 위헌 정당으로 결정돼서 해산되기도 했습니다.

2.4. 우리나라 헌법의 위헌정당 해산제도

우리 헌법 제8조 제4항: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 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2014년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을 청구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헌법재판소는 위헌해산심판청구에서 헌법 제8조 제 4항에서 말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위배’란,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나 저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불가결한 요소인 정당의 존립을 제약해야 할 만큼 그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하여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를 가리킨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서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위헌 정당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당시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활동을 통해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당 해산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라는 사회적 이익이 정당해산으로 초래될 수 있는 사회적 불이익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불이익이란 정당해산결정으로 인해서 초래되는 정당 활동의 자유 제한으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 영역에 대한 위축 효과를 의미합니다.

3. 방어적 민주주의와 국가보안법

또 한편에서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논리는 국가보안법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쓰이기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반국가 단체, 반국가활동의 해석은 주로 북한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어적 민주주의의 개념을 쓰면 그 개념이 조금 더 포괄적이고 넓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북한과 그 동조세력은 물론이고 이들과 관계가 없더라도 반국가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을 수 있다는 논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반국가단체의 개념은 국가보안법 규정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을 보면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라고 규정되어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한정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및 제5항의 규정은 각 그 소정의 행위자가 국가의 존립 안정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축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조건부로 합헌 결정을 내려서, 앞으로 국가기관이 재판소가 말한 대로 해석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해당 법률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리는 방어적 민주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입니다.

핵심은 헌법재판소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한계를 명확히 했다는 것입니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세력을 막기 위해서 존재하는 겁니다. 특정한 정치권력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어적 민주주의를 행사할 때에는 엄격한 비례의 원칙을 준수해야하며, 방어적 민주주의를 행사에서 얻는 헌정 질서 수호라는 이익과 그것이 초래하는 위험을 비교해야 합니다. 그래서 헌법 수호의 이익이 방어적 민주주의가 초래할 부작용을 압도 하는 것이 분명할 때에만 방어적 민주주의의 행사가 정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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